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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과외가 있었다고요? 500년 전의 공부 핫플 ‘서당 과외’ 이야기”

tipntalk 2025. 8. 16. 13:00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도 과외가 있었다고요? 오늘은 서당, 서원, ‘숙사’ 과외 교사까지! 조선의 사교육 풍경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했어요.

 

 

500년 전의 K-교육열

조선에도 과외가 있었어요, 진짜!

혹시 “조선시대엔 과외가 없었겠지?”라고 생각하셨나요?
천만의 말씀! 조선에도 지금처럼 학교 외에 따로 공부를 시켜주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그것도 꽤나 체계적으로요.

 

향교는 공교육, 서원은 사교육의 시작

조선시대에 ‘향교’는 국가가 세운 학교라면, ‘서원’은 사림들이 만든 사립학교였어요.
즉, 공교육과 사교육이 이미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는 거죠.
유명한 스승을 모신 서원은 지금으로 치면 명문 사립고와 비슷한 위상을 가졌습니다.

 

서당은 마을 과외 공간이었어요

서당은 요즘 말로 하면 동네 과외 학원 같은 존재였어요.
붓글씨, 천자문, 명심보감 등을 배우며 나이대도 다양했습니다.
7살 어린아이부터 20대 청년까지 한자리에 모여 공부했죠.
지역마다 ‘글 잘 가르치는 훈장님’이 유명세를 타기도 했어요.

 

정조 시대엔 '입주 과외'도 있었다고?

정조 때에는 성균관 근처에 한 번에 100명 넘는 학생을 가르치는 대규모 학원이 있었다고 해요.
거기엔 전속 과외 교사, 이른바 ‘숙사(塾師)’도 있었죠.
학생들이 합숙하며 공부하는 ‘입주 과외’ 형태라 지금 기숙학원과 비슷했습니다.

 

명문의 ‘족집게 과외’도 있었죠

고려 말부터 이어진 사례인데요, ‘문헌공도’라는 명문 사학은 여름마다 사찰에서 여름 집중과외를 열었어요.
그 중에서도 졸업생 중 잘하는 학생을 강사로 불러, 과거 시험 합격 비법을 전수했다고 합니다.
완전 조선판 족집게 강의죠.

 

과외 열풍, 생각보다 뜨거웠다

“공교육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고민은 그때도 똑같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많은 가문에서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더 선호했다고 해요.
유명 과외 선생을 찾아가고, 아예 집으로 모셔오는 경우도 있었다니 지금과 비슷하죠?

 

표로 한눈에 정리

항목설명
공교육 장소 향교, 4부 학당 (국립교육기관)
사교육 장소 서당, 서원, 숙사 과외
시대별 특징 조선 후기 정조 때 ‘입주 과외’ 성행
핵심 수요 과거 합격 위한 집중교육·맞춤수업
오늘과 비슷한 점 입시 중심, 명문 선호, 유명 강사 인기

 

 

정리하자면, 조선 시대에도 과외가 있었습니다. ‘서당’에서 배우고, ‘숙사 과외’를 받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죠.
시험 대비를 위해 계층 불문하고 사교육을 찾았던 모습은 지금과 닮았습니다.
500년 전에도 ‘K-교육열’은 이미 뜨거웠던 거죠.

👉 여러분은 조선시대 사교육 풍경 중 어떤 장면이 가장 흥미로웠나요?
‘입주 과외’, ‘족집게 과외’, ‘서당’ 중 하나를 골라 댓글로 이야기 나눠요!